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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 정사, 재실

시랑공파   l   충의공파

* 신도비, 정여

시랑공파   l   충의공파

* 묘 소

시랑공파   l   충의공파

 

 l 서원·정사·재실 (시랑공파)

위계서원

자양정사

용두정

온천정사

경모재

경모당

운곡정사

사인재

성산재

필산재

청계정

탁한재

철산정사

 

 

 

본문

온천정사(溫泉精舍)

   *9世 대사헌(大司憲) 매헌(梅軒) 휘인형(諱仁亨)의 사우(祠宇)

   *소재지: 경남 진주시 진성면 일사로693번길38-1 (온수리)

 

<온천정사(溫泉精舍) 기(記)>

 

진주(晋州) 남강(南江)의 월아산(月牙山)의 동(東)쪽에 온수동(溫水洞)이 있는데 동(洞)에 있는 술좌원(戌坐原)은 곧 함안이공(咸安李公) 매헌(梅軒) 휘인형선생(諱仁亨先生)의 무덤이다. 그 아래에 있는 재실(齋室)은 자손(子孫)들이 제사(祭祀)드리는 곳이다. 인천장공(仁川長公) 석영(錫英)이 상량문(上樑文)을 쓰고 선생의 십사세손(十四世孫) 정규(丁奎)가 나에게 기문(記問)을 부탁(付託)하니 삼가 살피건데 선생(先生)은 점필재(佔畢齋) 김선생(金先生)의 뛰어난 제자(弟子)로 일찍이 세조(世祖) 무자(戊子: 1468年)에 문과(文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성종(成宗) 경인(庚寅: 1470년年)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니 벼슬이 이로부터 비롯된다.

 

외직(外職)으로 금산군수(金山郡守) 밀양부사(密陽府使) 등(等) 여러 군읍(郡邑)을 맡아 다스렸고 내직(內職)으로 들어와서는 병조정랑(兵曹正郞) 승정원교감(承政院校勘)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대사간(大司諫)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으며 연산군(燕山君) 정사(丁巳:

1497年)에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선정(善政)하여 호남인민(湖南人民)의 *1)거사비(去思碑)가 있고, 기미(己未: 1499年)에 명(明)나라 사신(使臣)으로 *2)천자(天子)를 받들 때에 그 예(禮)를 다하고 풍속(風俗) 인정(人情)을 살핌을 가상(嘉尙)히 여기다. 경신(庚申: 1500年)에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 대사헌(大司憲) 신유(辛酉: 1501年)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이 되었다.

 

그러나 임술(壬戌: 1502年)에 연산군(燕山君)이 정사(政事)를 어지러이 하매 벼슬을 버리고 고향(故鄕) 진주군(晋州郡) 동면(東面) 가좌촌리(加佐村里) 진동(津洞) 가좌촌(佳佐村)으로 돌아와 매수(梅樹)를 심고 영매시(詠梅詩)를 지어 스스로 호(號)를 매헌주인(梅軒主人)이라고 하며 지조(志操)를 지키다가 계해(癸亥: 1503年) 七月 初三日 진동(津洞)에서 돌아 가시니 향년(享年) 六十八세(歲)로 동면(同面) 대곡리(大谷里) 마진동(麻津洞) 마법산(麻法山) 오음봉(五音峰) 아래 장사(葬事) 지내다.

 

선생(先生)이 갑자(甲子: 1504年)에 유자광(柳子光)이 터무니 없는 속임수에 들어 화(禍)가 *3)천양(泉壤)에 미치니 바야흐로 관(棺)을 쪼갤대 짙은 안개가 사방(四方)을 가리고 남강(南江)물이 거슬러 흐르는 것 같아서 김오랑(金吾郞: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이 크게 두려워하여 관(棺)을 걷우자 활짝 개이니 선생(先生)의 원통(寃痛)한 기운(氣運)이 능(能)히 천지(天地)의 귀신(鬼神)을 움직이다.

 

그리고 관(棺)을 짚으로 가린지 사년(四年)만인 중종(中宗) 정묘(丁卯: 1507年)에 추설복작(追雪復爵)하고 흙으로 덮도록 명(命)을 내리니 동면(同面) 진성리(晋城里) 온수동(溫水洞) 술좌원(戌坐原)으로 이장(移葬)하니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으로 증직(贈職)되고 부제학(副提學) 유희춘(柳希春)이 *4)경연(經筵)에서 왕(王)께 아뢰어 가증(加贈) 예조판서(禮曹判書)하다. 눌암(訥菴) 박지서(朴旨瑞)가 묘지명(墓誌銘)을 짓고 참의(參議) 김상직(金相稷)이 묘갈명(墓碣銘)을 짓고 대사성(大司成) 정은조(鄭誾朝)가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짓고 성균관교수(成均館敎授) 이상영(李商永)이 행장(行狀)을 지었다.

 

오호(嗚呼)! 슬프다 선생(先生)의 장자(長子) 혁(翮)은 생원(生員)이고 차자(次子) 분 (分羽 )은 진사(進士)인데 장낙원판결사(掌樂院判決事)로 부름을 받았으나 *5)불취(不就)하고 또 삼자(三子) 령(翎)은 정암(靜庵) 조선생(趙先生)의 고제(高弟)로서 중종(中宗) 기묘(己卯): 1519年) 사화(士禍)의 *6)혹화(酷禍)를 입으니 자손(子孫)들이 두려워 서 남(南)쪽 고을로 피(避)하여 감(敢)히 어느 할아버지의 손자(孫子)라고 일컬으지 못한지 오래이며 선생(先生)의 학문(學問)과 덕업(德業) 또한 거의 없어져서 일컬어지지 아니하다.

 

선생(先生)의 십사세손(十四世孫) 호규(鎬奎)가 나이 팔십(八十)이 넘어서도 선조(先祖)의 행적(行蹟)이 전(傳)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널리 알아보고 찾아내어 필재집(畢齋集), 한두사우록(寒蠧師友錄), 조매계명환기(曺梅溪名宦記), 진주지(晋州誌), 동국명신록(東國名臣錄)을 살펴서 가전(家傳)을 만들었으나 열에 하나 둘 밖에 못되고 또는 없애버리고 난 나머지 예락(禮樂)임을 면(免)치 못했다.

 

갑자(甲子: 1924年) 춘(春)에 십사세손(十四世孫) 종환(宗煥)이 종족(宗族)과 의론(議論)해서 묘(墓)아래에 오가재실(五架齋室)을 지어 온천정사(溫泉精舍)라 이름하고 행랑(行廊)을 동서(東西)로 하고 문액(門額)을 활원(活源)이라 하여 세제(歲祭)때에 자손(子孫)들이 모여 재숙(齋宿)하였으나, 북(北)에는 광풍정제월대(光風亭齊月臺)가 있어 선생(先生)이 평일(平日)에 머무르는 곳이나 여러 번의 병화(兵火)가 지나면서 광풍(光風)은 이미 터만 남고 제월(齊月)만 홀로 남강상(南江上)에 우뚝하니 노는 사람들이 *7)시가(詩歌)를 읊은 곳이며 월아산(月牙山)은 곧 선생(先生)이 은둔(隱遁)하던 곳이다.

 

일찍이 성종(成宗)이 아버지 창강공(滄江公)과 매헌공(梅軒公) 사형제(四兄弟)가 오부자(五父子) 육급제(六及第)를 하자 출생(出生) 마을을 "가좌촌(佳佐村)" 이라 사촌명(賜村名) 하였는데 마을 앞에는 선생(先生)의 자부(子婦) 선산김씨(善山金氏)의 정여(旌閭)가 있으니 곧 김씨(金氏)는 점필재(佔畢齋) 선생(先生)의 차녀(次女)이다. 시부(媤父) 매헌공(梅軒公)이 부관참시(剖棺斬屍) 되는 날 장남(長男) 희식(希軾)도 참화(慘禍)를 당(當)하자 피(避)할 수 없음을 알고 모든 화근(禍根)인 문적(文蹟)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자결(投身自決)하여 시신(屍身)도 수렴(收斂)치 못하였다. 그러나 중종조(中宗朝)에 나라에서 정여(旌閭)를 지어 기리는 은전(恩典)을 입으니 진주(晋州)에서 제일(第一)가는 정여(旌閭)이다.

 

오호(嗚呼)! 선생(先生)의 일문(一門)이 어찌 화(禍)는 혹독(酷毒)한데 어진이가 많은고 운수(運數)의 이치(理致)가 반(反)해서 어진이는 화(禍)를 입고 변변치 못한 이는 복(福)을 받는 가 하늘이 휼륭한 사람에게 화(禍)를 더욱 깊게 하여 어진이를 더욱 나타나게 하는구나 자손(子孫)들이 여러 세대(世代)동안 떨치지 못하고 임금의 시호(諡號)도 받을 기회(機會)도 없이 세상(世上)은 드디어 변(變)했다.

 

하늘이 선행(善行)에 대(對)하여 복(福)으로 갚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인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호(諡號)를 받은 자(者)가 반듯이 모두 어진 것도 아니고 또 어진이가 반듯이 모두 시호(諡號)를 받는 것도 아닌데 가(可)히 시호(諡號)가 없는 것으로 해서 선생(先生)의 경중(輕重)을 말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름난 조상(祖上)의 후손(後孫)이라도 먼저 성(盛)하고 뒤에 쇠(衰)한 자(者)도 있고 또 먼저 쇠(衰)하고 뒤에 성(盛)한 자(者)도 있으니 선생(先生)의 자손(子孫)이 장차(將次) 창대(昌大)할 것을 호규(鎬奎), 정규(丁奎), 종환(宗煥)이 효(孝)로서 선조(先祖) 받드는 것으로 내 알지다.

 

또 그 자손(子孫)으로서 이 정사(精舍)에 드는 자(者)가 한갓 재숙(齋宿)의 예(禮)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선조(先祖)의 덕업(德業)을 추모(追慕)하여 아름답게 행(行)하면 그 자손(子孫)이 창성(昌盛)하여 간송(澗松)의 울창함과 같이 푸른빛이 영원(永遠)히 변(變)하지 않을 것이다.

 

1926年 병인(丙寅) 삼월(三月) 중완(中浣)

신안(新安) 맹보순(盟輔淳) 근찬(謹撰)

 

 

 

*1)거사비(去思碑): 감사(監司)나 수령(守令)이 갈려간 뒤에 그 선정(善政)을 사모(思慕)하여 고을 주민(住民)들이 세운 비석(碑石)

*2)천자(天子): ①하늘을 대신(代身)하여 천하(天下)를 다스리는 이. 곧, 황제(黃帝) ②하느님의 아들

*3)천양(泉壤): ①죽은 뒤에 넋이 돌아간다는 곳 ②땅 속 (구천지하(九泉地下 )

*4)경연(經筵): 임금이 학문(學文)을 닦기 위(爲)하여 신하(臣下)들 중(中)에서 학식(學識)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궁중(宮中)에 불러 경적(經籍)과 사서(史書) 등(等)을 강론(講論)하게 하던 일

*5)불취(不就): 세상(世上)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에 대(對)하여 나서지 아니함

*6)혹화(酷禍): 혹심한 재화(災禍)

*7)시가(詩歌): 가사를 포함한 시문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 시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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