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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 정사, 재실

시랑공파   l   충의공파

* 신도비, 정여

시랑공파   l   충의공파

* 묘 소

시랑공파   l   충의공파

 

 l 신도비, 정여 (시랑공파)

보본단

선조추모비

뿌리공원 연원비

8세 대사성 창강 휘미 신도비

9세 대사헌 매헌 휘인형

9세 통훈대부 남원부사 행헌 휘의형

9세 목사 오헌 휘예형 누대제단비

10세 생원 휘혁 배의인선산김씨 정여

12세 고원군수 신천재 휘응성

12세 병조참판 송암 휘복 신도비

13세 자헌대부 병조판서 운포 휘달 신도비

 

본문

선조추모비(先祖追慕碑)

   *소재지(所在地): 경남(慶南) 고성군(固城郡) 마암면(馬巖面) 석마리(石馬里) 위계(葦溪)

 

<선비의 집안 함안이씨(咸安李氏) 가문(家門)>

 

함안이씨(咸安李氏)는 고려(高麗) 고종(高宗: 1213년~1259년)때에 큰 공(功)을 세운 상(尙)할아버지를 시조로 모신다. 상(尙)할아버지는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지내셨고, 파산군(巴山君)에 봉해졌다. 파산(巴山)은 지명으로 오늘날의 함안(咸安)이다. 상(尙)할아버지는 아들 두분을 두셨다. 형 되시는 분이 청(淸)이신데, 문하시랑(門下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내셨다. 아우 되시는 분이 원(源)이신데,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내셨다. 청(淸)할아버지에게는 아들 홍(弘)이 있었다. 홍(弘)할아버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지내셨다.

 

원(源)할아버지에게는 아들 방실(芳實)이 있었다. 방실(芳實)할아버지는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여러 차례에 걸쳐 큰 공(功)을 세운 상장군(上將軍)이시다. 특히 홍건적(紅巾賊) 이십만(二十萬)을 물리친 공(功)은 고려조(高麗朝)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했던 것이다. 방실(芳實)할아버지는 고구려(高句麗)의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 조선조(朝鮮朝)의 이순신(李舜臣)장군에 버금가는 큰 공(功)을 세우셨던 것이다.

 

청(淸)할아버지의 자손, 팔세(八世) 미(美: 창강공(滄江公))에 이르면 시대는 조선조(朝鮮朝)로 바퀴었다. 미(美)할아버지는 단종(端宗) 일년(一年: 1453년)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으로 계셨던 분이다. 유일한 국립대학의 총장격이며, 성리학(性理學)의 대가였다. 미(美)할아버지의 아들이 네 분인데, 인형(仁亨), 의형(義亨), 예형(禮亨), 지형(智亨)형제 분이시다.

 

인형(仁亨: 매헌(梅軒))할아버지는 세조(世祖) 사년(四年: 1468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을 지내신 분이다. 인형(仁亨)할아버지는 사림파(士林派)의 핵심인물이며, 사림파(士林派)의 거두 김종직(金宗直)과는 사돈간이다. 인형(仁亨)할아버지는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을 직간(直諫)하다가 끝내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년) 때 부관참시(剖棺斬屍)의 극형을 당한다.

 

의형(義亨: 행헌(杏軒))할아버지는 성종(成宗) 팔년(八年: 1477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암행어사,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남원부사(南原府使)를 지내셨다. 전형적인 사림(士林)이셨다.

 

예형(禮亨: 오헌(梧軒))할아버지는 예조좌랑(禮曹佐郞)과, 목사(牧使)를 지내셨다.

지형(智亨: 국헌(菊軒))할아버지는 기개가 대단한 분이셨다. 형님인 의형(義亨)과 함께 성종(成宗) 팔년(八年)에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을 지내셨다. 지형(智亨)할아버지 역시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끝내 자결하고 말았다.

 

팔세(八世), 미(美)할아버지와 그 아들들 오부자(五父子)는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 등 특히 맑고 고결한 직책을 수행하셨으며, 나라의 불의(不義)를 직간하다가 사화(士禍)를 당하는 기개에 가득 찬 선비들이셨다.

 

십세(十世) 령(翎), 십일세(十一世) 희민(希閔) 또한 을묘사화(乙卯士禍)로 극형을 당한다.

십세(十世) 도(翿: 의형(義亨)의 장자(長子)), 십세(十世) 허(詡: 의형(義亨)의 삼남(三男)), 경재공(敬齋公)), 십세(十世) 익(翊: 의형(義亨)의 사남(四男) 월암공(月菴公)) 형제분들 또한 사마시(司馬試) 문과(文科) 등에 급제하고 학문과 인격도야에 힘썼던 전형적인 사림(士林)이셨다.

 

시조 상(尙)할아버지의 둘째 원(源)할아버지의 자손 중에 세응(世應: 구(九世))이 있다. 세응(世應)할아버지는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신 분이다. 간신(奸臣) 유자광(柳子光)을 탄핵해서 실각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조(吏曹)와 예조(禮曹)에서 참판(參判)을 지냈으며, 사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 되었고 함안군(咸安君)에 봉해졌다.

 

세응(世應)할아버지의 아들 세 분이 계셨는데, 큰 아들이 진(震: 여주목사(驪州牧使), 둘째가 림(霖: 대사간(大司諫)), 셋째가 제(霽: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이다. 이 삼형제분 역시 기개가 높고 정의감이 강해서 결국 을묘사화(乙卯士禍)에 희생되고 만다.

 

청(淸)할아버지의 자손, 십삼세(十三世) 달(達: 운포공(運圃公))은 선조(宣祖) 이십오년(二十五年: 1592년)에 일본(日本)이 대군(大軍)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고성(固城), 사천(泗川), 진해(鎭海), 창원(昌原) 등지에서 맹활약을 하다가, 그 해 십월(十月) 진주성(晋州城) 전투에서 큰 공(功)을 세운다. 그 후에도 당포(唐浦) 해전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신다. 운포공(運圃公) 달(達)할아버지는 삼도통제우후(三道統制虞侯),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지내시고, 돌아가신 후에는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추증되셨다.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년),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년) 동안에 민족애(民族愛)를 발휘하고 전공을 세운 함안이씨(咸安李氏)는 비단 운포공(運圃公) 한 분에 그치지 않았다. 십일세(十一世) 석형(碩亨)할아버지는 아들 민(旻), 승(昇), 안(晏) 삼형제와 더불어 사부자(四父子)가 격전을 벌이다 막내 안(晏)만 살아남고 이부자(二父子)는 전사하고 만다. 십이세(十二世) 우춘(遇春), 성춘(成春), 응춘(應春), 득춘(得春) 사형제분과 성춘(成春)의 아들 장(檣)은 진양(晉陽) 대방산성(大防山城)을 지키는데 큰 공(功)을 세웠다.

 

십이세(十二世) 복(福), 십이세(十二世) 강(日工 ), 십이세(十二世) 응성(應星: 신천재(新川齋)), 또한 눈부신 공(功)을 세웠으며, 역시 십이세(十二世) 엽(曄)은 격전중에 가등청정(加藤淸正)에게 포로가 되었고 일본(日本)으로 끌려가 풍신수길(豊臣秀吉) 앞에서 왜(倭)의 비리(非理)를 추궁하다 끝내 자결하고 말았다.

 

참으로 함안이씨(咸安李氏) 가문은 전형적인 선비집안이요, 기개에 가득 찬 집안이다.

 

 2002年  月

서울대학교 교수 상희(相禧: 二五世)가 삼가 글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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